라코프이야기
여러분, 손을 한번 유심히 들여 다 보세요. 때로 저는 글을 쓰거나 물건을 쥐어 들거나 손가락을 펼 때 제 손을 유심히 들여 다 보곤 합니다. 탁자 위에 쌓여있는 짙은 색의 책을 배경으로 보면 마치 희미하게 빛나는 별처럼 보입니다. 뼈, 살, 신경 조직으로 이루어진 손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볼까요? 우선 손으로 축복을 하거나 저주를 할 수도 있고, 피가 나게도 하고 상처를 묶기도 하지요. 손은 부드럽기도 하지만, 나쁘게 쓰이기도 하고, 간청을 할 때도 쓰이고, 열렬함을 나타낼 때에도 쓰입니다. 우리는 손으로 철교를 용접할 수도 있고,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기도 합니다. 즉, 손은 다치게도 하지만 치유하는 힘도 있습니다.
라코프가 14살 때의 일이었다. 라코프의 집에는 밀을 팔아 생계를 꾸리던 티모페이라는 노인이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그 노인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다. 티모페이는 라코프의 손을 쥐더니 경건하게 손에 십자가를 그으며 “바실리 오시포비치 라코프, 너는 이 두 손을 악하고 부도덕하거나 치욕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고, 오직 위로하고 베풀며 치유하는 데에만 사용하도록 봉인하는 바이다. 네 손은 고통으로 주름진 이들의 얼굴을 따뜻하게 쉬게 하고, 지친 몸을 쓰다듬어 주며, 가난한 이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따뜻한 옷을 줄 것이다. 네 손은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크게 감동을 받은 라코프는 오랫동안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는 어색함에 어쩔 줄 몰라 귀가 빨개졌고 눈을 두리번거리며 마룻바닥만 쳐다보았다. 티모페이가 한 말에 크게 놀란 소년은 재빨리 숨어 버렸지만, 여전히 노인의 낯설지만 놀라운 축복이 귓가를 맴돌았다.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티모페이는 돌아서서 가버렸고, 그는 얼마 후 세상을 등졌다. 그러나 그의 말은 죽지 않았다. “네 손은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축성인 동시에 부르심 이었다. 하느님은 티모페이의 입을 통해 말씀 하셨고, 이 말씀에는 변화시키고 정화시키며 더 명확하게 비전을 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라코프는 1861년 러시아 툰드라와 백해 사이에 위치한 아르한겔스크1 아르한겔스크(Archangelsk):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주(州)의 주도. 겨울에도 쇄빙선으로 대부분의 항로가 개통되며, 북극해 연안과 시베리아 북부로 물자를 수송하는 러시아의 주요 항구도시. 의 한 존경 받는 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하기는 했으나 그의 아버지도 티모페이처럼 곡물상이었다. 라코프는 항만 근처에 있는 큰 석조 건물의 저택에서 자랐는데, 모두들 그가 아버지의 가업을 이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집안에서 오랫동안 친하게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 독일의 큰 수출회사를 보유한 사람이 있었다. 17세가 되던 해에 라코프는 그 사람의 도제가 되어 매일 그의 집에 가서 상거래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라코프의 스승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신실한 신자였고,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라코프의 18번째 생일에 그의 스승은 그에게 성경을 선물했다. 그는 라코프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사랑하는 라코프야, 너는 내게 아들과 같은 존재다. 나는 오래 전부터 네 눈을 봉인하기를 소망해 왔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똑똑히 보아라. 모든 것이 이 책에 달려 있다. 너의 눈이 진정으로 열리지 않는다면, 너는 마치 장님과 같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나는 아버지와 같이 네 눈을 봉인하는 바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너에게 장애물이 아니라, 위로와 지혜 그리고 평안의 원천이 되기를 바란다. 네 눈은 이 성스러운 책 안에서 오직 예수님의 권능과 위대한 사랑만을 보게 될 것이다.” 라며 그를 축복했다. 라코프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생각에 잠겼다. ‘봉인’이라는 낯선 말이 다시 그의 귓가에 맴돌면서 그는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라코프는 거의 매일 저녁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성경책을 몰래 읽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사제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정교회 신자였고 분명 그가 성경을 읽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상인의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그에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기 원하셨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기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고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당연히 이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성경에는 “나에게 가까이 오는 자는 불 곁으로 가는 것과 같다” (he who draws near to me draws near to the fire)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다음 해 겨울, 먼 사촌 뻘 되는 친척이 가족을 데리고 아르한겔스크로 이사를 왔다. 형편이 가난했던 그 친척은 라코프의 아버지에게 그가 어디에 사는지, 그들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계속해서 말했고, 그의 등살에 지친 라코프의 아버지는 어느 주일날 라코프와 함께 직접 그를 찾아가 도울 것이 있는지를 보기로 했다.
아버지와 함께 누추한 천막 같은 지하실 집에 들어서자 일곱 식구가 한 방에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굶주린 채 거의 벌거벗은 모습이었고, 바닥은 너무 더러워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사촌이 이들에게 페인트 칠이 벗겨진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하며 자리에 앉자, 그의 아내가 갈색 찌꺼기를 닦으려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라코프는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일단 앉았다.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벽 한쪽에는 작고 높은 창이 하나 있었지만 빛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창 틈으로 찬바람이 쌩쌩 들어왔다. 라코프의 아버지가 근처 여인숙에서 고기를 주문했다. 주문한 고기가 오자마자 굶주렸던 그의 사촌은 고기 한 점을 와락 잡더니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고, 그의 가족들도 잇따라 먹기 시작했다. 라코프는 이 끔찍한 광경을 잊을 수 없었다. 이 얼마나 불결하고 천박한 모습이란 말인가. 동물과 같은 이들의 모습을 보는 라코프는 심장이 조여 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들이 자기 친척이라니 더 기가 막혔다. 그날 저녁 그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생각했다. 그의 눈을 열어 마치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그의 눈을 불태운 분은 주님이 아니신가? 그는 통곡하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미 그는 그 답을 알고 있었기에 부끄러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의 손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축복하는 손이었다.
그날 밤 이후, 매 순간 새로운 통찰력들이 라코프에게 주어졌고 계속 그를 이끌어 갔다. 이제까지 소중하게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당연했던 사실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는 평안을 누릴 수가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달콤하게 울려 퍼지던 교회 종소리를 들을 때면 모든 근심이 사라지고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었지만, 지금은 불안해 지면서 주교가 지닌 막대한 부와 고통 받는 소작농들의 가난만이 생각 날 뿐이었다. 이전에 그는 1000파운드나 되는 성인(聖人)들의 조각상과 개당 천 루블이나 하는 값비싼 양초, 황금 빛 이미지와 벽에 걸린 장식품에 감탄을 했지만, 이제는 이런 아름다움은 위로를 구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위선이었다. 마침내 그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처음으로 자선활동을 시도했다. 2월의 어느 비 오는 날, 그는 창가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길을 가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그 걸인을 방으로 들여 씻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힌 후 음식과 자신의 잠자리를 주었다. 멍하니 있던 걸인은 라코프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값비싼 가구와 벽걸이 융단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마찬가지로 말문이 막혔던 라코프는 그에게 자신의 금시계를 쥐어 보냈는데, 그는 다음 날 매우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환멸감이 밀려오면서 라코프는 관대함의 가치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는 그의 아버지의
사고 방식을 따랐고,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곤궁함을 책임을 져야 할 사기꾼 혹은 거짓말쟁이거나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개념 조차 없는 형편없는 인간 쓰레기라고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해서 그의 내면에서 일하고 계셨다. 곧 라코프는 다시 불안해 졌고 평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혼돈에 빠진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전도사였던 사람을 찾아갔다. 이 마르크스주의자는 언젠가는 러시아가 평등한 경제 제도 아래 모든 시민이 평등한 사회로 대체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라코프는 처음에 그의 말에 솔깃했지만 이 사람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권력을 쟁취하는데 열중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는 돌아섰다. 그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었다. 1881년, 라코프가 스무 살 되던 해, 그의 스승은 그에게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 있는 사탕무 공장의 관리를 맡겼다. 처음에 라코프는 그곳에 가는 것이 좋았지만, 일년 반이 지나자 황량하고 끝없이 펼쳐진 전경에 한없이 우울해졌다. 공장 노동자들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이들 대부분이 폭음을 했고 행동이 거칠었다. 라코프는 이들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때 그는 우연히 소작농의 아내인 이리나 네스쩨로바를
만나게 되었다. 이리나는 안경을 쓰고 키가 작은, 오십대의 아주 상냥한 부인이었다. 또한 그녀는 예수님의 헌신적인 제자였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할 때, 또한 그녀의 친절한 목소리와 따뜻함은 라코프를 비롯해서 그녀를 만나는 모든 이들을 사로잡았다. 이리나의 집에는 네 가정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때 거칠고 엉망이었지만, 점차 이리나의 차분함에 동화되어 갔다. 이리나는 신자들의 모임에 속해 있었고, 그들은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그녀의 집에 모였다. 그들은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면서 서로 격려했고, 함께 기도하고 찬양을 드렸다. 라코프의 공장이 있는 그 마을의 부유한 지역과는 달리, 가난한 지역 사람들은 이리나 덕분에 완전히 달라졌다. 어떤 사람이 아프면, 그녀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날이 추우면 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했고, 날이 더우면 물을 가져 다 주었다. 어떤 여자가 술 취한 남편에게 얻어 맞자, 이리나는 제일 먼저 그 집으로 달려가 친절한 태도로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후에,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그를 훈계했다. 이리나 안에는 예수의 성심이 일하고 계셨다. 어느 날, 라코프는 그녀에게 물었다. “부인, 부인의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하느님에 대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무엇인가요?”
이리나는, “내 눈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모두 똑같이 고통 받고 있을 뿐이야.” 라고 답했다. “부자가요? 부자는 따뜻하고 안락하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와 같다는 거죠?” 하고 그가 소리쳤다. “어떤 사람도 재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롭지는 않단다. 돈이 반드시 부(副)를 뜻하는 건 아니지. 맞아, 가장 부유한 사람들조차도 불쌍하단다. 모두가 불쌍한 존재일 뿐이야. 모든 피조물들이 엄청난 슬픔에 억눌려 신음하고 있고, 이 땅도 고통에 울부짖고 있어. 동물과 나무들, 샘물과 돌, 불, 하늘에 별들도 한숨 쉬고 있지.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곧 도래할거야. 예수님께서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계시지. 그리고 우리를 슬픔에서 구해 주실 거야. 예수 성심은 이 모든 아픔을 치유하고 화합하고 축복하신단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고 계셔. 은총과 힘든 사역을 통해서 우리를 속박에서 풀어주시고 우리를 아이들과 같이 만들어 주실 거야. “아이들처럼요?”
“그래, 아이들처럼. 진짜 아이들은 예수님의 성심이 그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백 루블이 있든 삼 코펙이 있든 상관없이
항상 행복하지.” 하고 말했다. “부인의 말씀이 맞아요. 제 친구 중에 항상 병 중에 있는 루프킨씨의 아들이 있는데, 그는 폐에 문제가 있어서 여러 번 수술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스스로 불행해 하면서 살고 있지요. 그의 누나는 건강하지만 마찬가지로 불행하고요. 그 누나는 응석받이에다 지루한 사람이에요. 모든 안락함을 누리고 있고 많은 재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몇 시간이고 창가에 서 있거나 항상 우울하고 기분이 언짢아 있어요. 루프킨의 부모님은 툭하면 심하게 다투고, 심지어 좋은 날에도 항상 신경전을 벌이며 살고 있어요.” 이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령으로 치유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차갑단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얼마나 달라지는 몰라. 너도 나타샤를 알지? 나타샤는 결핵 때문에 삼 년 동안 병상에 있었지만 울거나 불평한 적이 한번도 없단다. 항상 희망과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라코프는 이리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고,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그녀에게 부탁했다. “이리나 부인, 저를 축복해 주세요.”
”이리나는 그의 가슴에 십자가를 그으며, “기꺼이 축복하마.
나는 네 마음을 봉인할 것이다. 예수님만이 이 마음을 지배할 것이며, 모든 슬픔과 불만은 사라질 것이다! 예수 성심이여, 어서 오소서. 이 사람 안에 거하셔서 그가 당신의 순결한 사랑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함께 하소서.” 하고 그를 축복했다. 라코프는 몸이 덜덜 떨리면서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로써 그는 세 번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세 개의 봉인이라니! 이제서야 모든 것이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그의 손은 예수님의 손과 같이 부드럽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열심인 손이 되어야 하고, 그의 눈은 예수님의 눈처럼 분명하고 사랑과 진실로 가득한 눈이 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처럼,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평화를 찾아야 한다.
젊음이란 결코 항로가 분명한 항해가 아니었기에 여전히 많은 폭풍이 라코프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탐욕과 잔인함, 독선, 욕망, 기만에 대항했지만, 아직도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는 예수님을 섬겨야만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그가 쏟아내는 관심에 기뻐하시지도 않는 듯 했고, 끊임없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며 또 다른 고된 요청으로 채찍질하시면서 그에게 더 많이 희생하고 베풀기를 요구하시는 것 같았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것은 라코프가 평화를 발견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대항하는 모든 것이 인간의 내부에서 모두 파괴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비로소 답을 알 수 없었던 고민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아르한겔스크에 다시 돌아온 라코프는 불안함과 예언이 성취되는 예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이제 22살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배우자가 될 만한 사람을 찾으려 했는데 실제로 친절하고 부유한 여자를 하나 찾았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다르게 돌아갔다. 어느 가을날 밤, 한참을 내면의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그는 꿈을 꾸었다. 멀리까지 뻗어있는 미개간지를 보았는데 밭은 완만히 경사진 상태로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갑자기 지평선 위로 환한 빛이 나타나더니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단아함으로 둘러싸인 그 빛은 고귀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갈색 옷을 입은 그 남자는 쟁기를 이끌고 새롭게 바뀐 고랑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를 경외하는 무리가 따르고 있었다.
갑자기 바이올린 현을 가르는 얇고 한결 같은 소리가 공기를 가로 질렀다. 아니면 아기의 숨 죽인 울음소리였나? 쟁기를 든 그 남자는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였고, 따르던 무리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 소리는 근처 오두막집에서 나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오두막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라코프도 그의 뒤를 따랐다. 한 아기가 울고 있었다. 그 남자는 조용히 아기를 들어 올려 입을 맞추었고, 곧 아기는 울음을 멈추었다. 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부드럽고 동정적이어서 라코프는 감동을 받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오두막을 나오더니 다시 무리에게로 돌아갔다. 갑자기 그 남자를 경외하던 무리는 갑자기 폭도로, 그를 환호하는 소리는 경멸하는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라코프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그는 불안함에 떨었던 그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바래왔던 것을 봤던 것이다. 그가 본 것은 어린 아기를 들어올리려 몸을 숙이던 예수님이었다. 갑자기 그는 완전히 깨닫게 되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가 꾸었던 꿈에 대해 뜨겁게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나서 아무것도 없이 옷만 걸친 채 조용히 부모님의 집을 빠져 나왔다.
달은 휘영청 밝게 비추고 있었고, 부드러운 미풍이 머리를
간질였다. 그는 기쁨에 차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어 내려갔다. 잠시 멈추어 서서 그가 꾼 꿈의 의미를 묵상하려 했지만 곧 가슴이 벅차올라 다시 더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꿈을 해몽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예수님을 보았고 그것이 제일 중요한 사실이었다.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몽둥이나 날카로운 화살처럼 그에게 불안감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평화의 원천이자 사랑의 불꽃, 기쁨의 태양이었으며 온전한 찬미의 근원이었다. 라코프는 감사와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예수님, 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갈게요! 제가 갑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어둠을 향해 이렇게 외치며 달리고 또 달렸다. 5일 동안 계속 동쪽을 향해 걸어서 Pinega의 수도에 다다랐다. 6일 째 되는 날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사는 라디노브카까지 걸어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어슴푸레 새벽 동이 트고 있었고, 촉촉한 가을비가 비포장 도로의 먼지를 휘저었다. 첫 번째 집 앞에서 지저분한 빨간 머리의 허름한 차림의 한 여자가 돼지 떼를 몰고 가고 있었다. “이 마을에 성인이 계신가요?” 하고 그가 묻자,
“네, 훌륭한 어르신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주로 기도하거나 찬송을 하시지만 지금은 편찮으셔서 누워 계세요. 나를 따라오세요.” 하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는 라코프를 근처에 있는 집으로 데려갔다. 그 집에는 한 노인이 난로 옆에 누워있었는데 그는 발이 부어올라 양털로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형제님, 말씀해 주세요. 형제님은 하느님의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쁘게 인사 드립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전 라코프라고 합니다.” 하고 물었다. “방황하는 형제여, 나도 형제님을 환영하오. 그런데 슬프게도 당신은 이름이 있군요. 나는 이름이 없다오.” 하고 노인이 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고 라코프가 물었다. 노인은 위쪽을 가리키며, “저 위에 계신 분은 이름이 없으시다오.”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자신을 가리키면서, “저 위에 계시는 분은 여기에 살고 계시고 이 둘은 모두 하나이고 같은 사람이라오. 나는 그 이름 없으신 분의 일부라오. 이건 내가 땀보프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을 때 그레고르 뻬트로프라는 사람이 말해준 거라오. 그레고르는 하느님을 경외하던 농부였소. 어느 존경할 만한 분이 성스러운 언어로 쓰여진 성스러운 책을 그에게 주었는데, 그가 그 책에서 읽었던 것이라오.”
“이리 와 보세요. 제가 낫게 해 드릴게요.” 라고 라코프가 말했다. 노인이 그의 말을 따라 라코프에게 다가서자 라코프는 난로에서 따뜻한 물 한 양동이를 가져 다가 노인의 다리를 씻기고 마사지도 해 주었다. 라코프는 그 노인이 마치 아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 성스러운 책에는 또 뭐라고 적혀 있나요?”하고 묻자, “참된 믿음은 매일의 투쟁이고, 금식은 육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된다고 하지요. 또 인간은 천국에 있는 천사처럼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고도 적혀있다오. 설사 결혼한 사람이라고 해도 절제하면서 모든 욕망을 이겨낼 때까지 기도해야 하고, 목에 걸린 구리 십자가의 도움을 받아 이 모든 것을 감당해 나갈 수 있다오. 한번 보시오. 이건 내가 걸고 있는 십자가라오.” 라고 말하며 노인은 자신의 십자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언젠가 심판의 날이 오면,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수를 셀 것이고, 나처럼 십자가를 진 사람만이 구원 받을 것이오.” 하고 말했다
노인은 가끔은 지혜로운 말로, 때론 엉뚱한 이야기들을 오래 지껄였고, 그 동안 라코프는 노인의 상처를 다독이던 것을
끝냈다. 밤이 되자, 방 안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는 여인들과 아이들로 가득했다. 남자들은 술집에 있었다. 라코프는 그의 얘기를 듣는 사람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고, 또 그들에게 복음서를 읽어 주었다. 여자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 어둠 속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남자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구타하면서 잇따라 분노에 찬 고함을 질러댔다. 라코프는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서 그들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잠잠해 지기를 기다렸다. 여기가 바로 그가 머물러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라지노프까에 2년을 머물렀고,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일을 도왔다. 무엇보다 그는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만을 했는데, 이를테면 환자들을 돌보았고, 더러운 나무 바닥을 청소 하거나, 칠이 벗겨진 벽을 부수고, 버려진 동물들을 씻기고, 오물이 넘쳐 나는 마구간을 치우는 일 등을 도맡아 했다.
라코프는 그 지역의 사투리만을 알고 있는 마을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를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복음서를 읽어주면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집 구석에 있는 작은 성소에 있는 예수님의 형상으로는 충분치 않아. 우리는 우리 눈과 두 손과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야 한단다.”
하고 말했다. 저녁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믿음으로 이들을 강하게 했고, 금식하거나 절제하는 금욕주의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라고 가르쳤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마을 남자들은 점차 술을 마시기를 멀리했고, 여자들은 남을 헐뜯거나 뒤에서 흉보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눈빛은 더 부드러워지고, 손은 더욱 온화해졌으며, 말은 더 따뜻하고 친절해졌다. 남편들은 아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을 더 존중했으며, 아이들은 부모님을 존경하며 순종했다. 라코프가 마을에서 친구로 받아들여지기 훨씬 전부터 그는 아주 어린 아이들을 돌볼 만큼 신뢰를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24살의 어린 라코프를 다정하게 바실리 신부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도 한 명만은 예외였다. 라코프가 라지노프까에 도착했을 때 이 마을에는 동방 정교회 신부가 살고 있었다. 이 신부는 전염병을 앓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돌보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의 아내조차도 병에 전염될까 두려워 하며 가까이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라코프 만이 용기 내어 신부를 방문했고, 따뜻한 습포를 가져가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그는 점차 라코프의 간호를 받아
완치되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아마 그에게 고맙다고 했겠지만, 이 신부는 그렇지 않았다. 라코프의 인기를 질투했고, 그가 이렇게 친절한 데에는 필시 자신을 침대에서 끌어내어 일만 시키려는 계략일 거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특히 이 젊은이가 술 마시는 문화를 강하게 비판하자, 술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신부로서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신부는 “이보게, 내가 몇 년이고 이 버려진 땅에서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희생인 줄 아는가? 반 굶주림 상태로 고되게 일만 하고, 아내와 자식과는 원수가 되었네. 온통 둘러보면 얼어붙은 쓰레기 더미만 가득해. 내 고향인 피네가에서 난 남자 중에 남자였지만, 이곳에서는 돼지 같은 녀석들 틈에서 그저 술 마시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술만 있으면 적어도 잠시라도 이 끔찍한 곳에서 도망쳐서 그 젊은 시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으니까. 포도주는 정말 선하신 하느님의 선물이라니까. 왜 거기 그 시편에서도 심지어 찬미하고 있지 않는가!” 하고 불평했다.
이에 라코프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신부님, 이제 술은 그만 드시고 신부님이 말씀하신 이 지옥과 같은 곳을 온기와 사랑이 가득한, 예수님을 위한 정원으로 바꾸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신부님도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원망하거나
술 취한 상태로 도피하고 싶으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예수님을 위한 정원?”하고 신부는 눈을 굴리며 반박했다. “그게 바로 자네에게 내가 화를 내는 이유라고. 자네는 예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얘기하지 않아. 그저 항상 예수님, 예수님! 그런 태도 때문에 자네가 바로 사이비 교도처럼 보이는 거라고. 이 소작농들은 너무 아둔해서 예수님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걸 모르겠어? 마을 사람 중에 파렴치한 불량배 같은 사람이 아닌 사람이 있으면 말해보게. 예수님과 그런 불량배들이 함께 할 수 없어. 종교는 기도로 충분하네. 누구라도 할 수 있어.” 하고 말했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그냥 기도하는 대상으로만 있는 예수님은 구름 속에 있는 한낱 우상에 불과합니다. 그런 우상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나요? 우리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슴으로, 눈으로, 손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우리는 우리 가운데, 바로 이곳에 예수님의 사랑이 살아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일하고 계세요. 타라스나 아니싸를 보세요. 마을 사람들을 한번 보세요. 예수님은 이미 그들 안에 거하고 계세요. 그들은 예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고 계속 해서 말했다.
그러나 신부는 그를 계속 불신했다. 그가 비틀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며 저주를 퍼붓고, 실없이 웃으며 싸구려 포도주 냄새를 풍길 때면, 마을 농부들은 넌더리를 내며 그를 기피했다. 예전에는 이들은 그에게 달려가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며 그를 신뢰했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실없는 농담을 하며 그의 손에 키스를 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제 아르한겔스크에서 온 침입자, 라코프에게 달려갔다. 라코프를 없애 버릴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피네가에서 날아 온 정부의 명령으로 라코프는 더 이상 마을에 살지 못하게 되었다. 마을 여자와 남자들 모두 그 소식을 듣자 눈물을 흘렸지만, 라코프는 동요하지 않았다. “아무 이유없이 추방당한 사람은 저 뿐이고, 예수님은 여전히 라지노프까에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여러분 가운데에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다만 여행 중인 것입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라코프는 아르한겔스크로 향했고, 다시 고향으로 왔을 때에는 5월이었다. 황량했던 동토는 이미 초록색으로 덮여 있었고, 물가의 있는 오리나무 가지가 흔들거리고, 꽃들은 만개했으며, 새로 판 고랑은 새로운 생명들과 함께 숨쉬고 있었다. 이후 몇 년간 라코프의 어머니는 이 때를 추억하며 천상의 봄과 같았다고 했다. 아들이 다시 집에 돌아왔고, 그녀는 다시 한번
아들을 돌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사사건건 반항했던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런 아들이 갑자기 돌아오자 마자 사라졌다. 한마디 말도 없었다. “예수님이 저를 부르고 계세요. 전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하고 계세요.” 라는 짧은 메모가 전부였다. 라코프의 어머니가 쪽지를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그는 멀리 가고 없었다. 그의 발걸음은 자신감에 찼고 수염이 난 얼굴은 햇빛과 비바람으로 지쳐보였다.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이 그의 목표였기 때문에 그는 매일 새로운 장소를 돌아다녔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의 사랑에 이끌렸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그의 축복을 느꼈고 그의 진지한 눈빛에 보답했다.
라코프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었는데, 그가 방문하는 마을마다 그는 망치와 못, 톱, 칼, 줄 등을 꺼내 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갔다. 염소가 과부의 정원을 망치기라도 하면 그는 울타리를 고쳐주었고, 겨울철에 연료가 없어서 쩔쩔매는 장애인이 있으면 하루치 땔감을 나누어 주었으며, 병에 걸린 젊은 애기 엄마가 있었는데 애기 엄마가
갓 태어난 아기를 안을 수 있을 때까지 극진히 병간호를 했다. 또 한번은 죽어가는 노인이 숨을 거둘 때까지 자리를 지켜 주기도 했다. 라코프는 죽어가는 노인에게 저 세상의 기쁨에 대해 워낙 생생하게 얘기해 주어서 노인은 천사가 왔다고 착각할 정도 였다. 노인은 “그럼 당신은 그곳이 어둡고 썩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거요?” 하고 죽음에 대해 물었다. “그럼요! 어르신은 부활절의 태양처럼 빛나는 밝고 멋진 아침과 같은 충만한 삶 속으로 가시는 겁니다.” 하고 노인을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천상 세계의 아름다움을 얘기해 주었는데, 노인은 점차 평안을 되찾았고, 마지막에는 영원한 봄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갈망했다.
때로는 라코프를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두 명의 신실한 젊은 여자들이 그의 섬김의 부르심에 대해 듣고서 몇 주 동안이나 그를 따라 다녔다. 이들은 라코프를 위해 음식을 구걸하고 요리를 했고, 그의 옷을 빨고 그의 지팡이를 고쳐주었다. 그가 이들을 떨쳐내지 않는 한 그의 곁을 한시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가 잠시 머물렀던 마을을 떠날 때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지만, 그는 부드럽고 정중하게 피했다. 얼마 안 있어
예수님이 러시아 전역을 여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라코프의 행동과 말이 너무나 헌신적이고 순수했기 때문에 예수 성심이 그를 통해 드러났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키면서 좋은 열매를 맺었다. 러시아 최남단 끝까지 도달했을 때의 일이다. 자콥 이스토민이라는 사람이 이끄는 교파가 라코프에게 다가와 “당신은 우리 편인가요?” 하고 물었다. “그건 당신이 누군가에 따라 다르지요, 형제님.” 하고 라코프는 따뜻하게 답했다. 자콥 이스토민은, “우리는 방랑자이자 여행자이며 순례자입니다.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데, 이반이라는 한 수도자가 가르치기를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기려면 적그리스도로부터 계속 도망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계속 쉬지 않고 이동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세상은 적그리스도가 지배하고 있고, 그들은 처음부터 우리의 적이었습니다. 모든 신부와 목사들, 군인들도 모두 적그리스도지요. 우리는 이 싸움에서 그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러시아의 끝없는 들판과 숲을 가로질러 도망치고 있어요.” 하고 말했다.
“우리는 교회와 국가 등 모든 고리를 끊고 세상과의 접촉을 경멸합니다. 세금을 내지도 않고, 군복무나 정부 기관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며 주교나 사제들을 존경하지도 않습니다.
여권 같은 서류는 필요가 없어서 찢어 버리거나 불태워 버렸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어서 절대 돈을 지니고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에만 의지하고 살지요. 믿음으로 우리는 식량과 옷을 충분히 공급 받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가 경배하는 것은 오직 모두가 들고 다니는 작은 십자가 입니다. 여기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한번 보십시오. 예루살렘에서 새겨넣은 십자가인데, 이 십자가가 우리의 유일한 여권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서 순례자이자 이방인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세속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이 세상과 함께 멸망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라코프는 그 남자의 말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겸손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콥 이스토민에게 예수님의 단순한 사랑을 일깨워 주면서 그의 복잡한 생각들이 착각이라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만이 마지막을 얘기할 수 있지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분을 환영하는 곳이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어느 곳이든지 다스리시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들은 예수님께서 활발하게 살아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감지하고 도망쳐 버릴 것입니다.
“항상 도망을 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추종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용감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터전을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세우시고 함께 모으시며 확증해 주십니다. 당신은 터전을 붕괴시키고 해체 시키며 도망치고 숨지요. 예수님께서는 축복을 내리시지만, 당신은 저주합니다. 당신은 분리시키지만, 예수님께서는 결속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곳은 평안과 기쁨, 사랑이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곳에는 적그리스도가 도망가지요. 교만한 자여, 무릎을 꿇으시오! 오직 예수님께 항복하시오. 오직 그분만이 권능이 있으십니다. 마침내, 자콥 이스토민은 라코프의 말에서 진리를 깨닫고 그를 따랐다. 결국 라코프는 따르지 말라고 내쫓기는 했지만 말이다. 큰 강의 입구에서 아쏘프海까지 내려갔을 때, 라코프는 아브로씸이라는 지친 모습의 은자(隱者)를 만났다. 동굴에 살고 있던 그는 성인들의 삶에 깊이 감동 받아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의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브로씸은 매일 강으로 내려가 물고기를 잡아 생활했고, 그 외에는 묵상과 기도로 시간을 보냈다. 정오가 되면 그는 초원에서 춤을 추며 언덕 꼭대기에서 긴 수염을 휘날리며
천천히 원을 그리며 내려오곤 했다. 이는 모두 천국의 초원에서 하느님의 친구와 성인의 춤을 상징화한 것이다. 밤이면 그는 동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쁨에 차서 별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이 행위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을 마주하는 성스러운 시간에 대한 사랑을 상징한다. 자정이 되면 그가 파놓은 무덤 누웠는데, 이는 죽음과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절을 하고 일출을 향해 달음질을 하고 손을 올린 채 기도를 했는데, 이것은 부활을 상징했다. 아브로씸은 매일 이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살았고, 인간의 이승에서의 삶과 저승까지의 삶을 몸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라코프가 그 은자를 찾았을 때 그는 아파서 누워있었다. 이에 그는 몇 주간 내낸 동굴에 머물면서 그 노인을 돌보았고 또 많은 것을 배웠다. 마침내 그들이 헤어질 때가 되자, 노인은 울면서 말했다. “자네는 나에게 어머니와 같았네. 나는 이렇게 늙었지만, 자네가 헌신적으로 나를 돌봐주었을 때, 나의 어머니를 생각했다네. 자네가 보여준 사랑에 감사하네. 내 삶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나도 자네처럼 밖으로 나가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그분의 성령으로 채웠을 텐데… 하지만 나는 그럴 수 가 없네. 그러니 나의 축복을 받고, 나를 축복해 주게나.”
라코프는 배우고, 가르치고, 치유하면서 이곳 저곳을 여행했다. 마침내 그는 러시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그는 시내를 돌아다니고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했다. 그는 크게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슴이 아팠다. 가난한 순례자들은 착취를 당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사제들이 가장 악랄하게 순례자들을 속였다. 고통스럽게도 그는 예루살렘이 성스러운 곳이기는 했지만, 그곳에 예수님이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옛날에 예루살렘이 예수님을 거부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 였다. 배신자 유다가 아마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느낄 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느 날 라코프는 대규모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리스 정교회 주교는 4명의 고위직 사제들을 옆에 거느린 채 눈부시게 흰 실크 성좌에 앉아서 거리로 내려오고 있었다.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졌고, 구름떼 같은 대규모 행렬이 웅장한 교회를 향하고 있었다. 군중을 뒤따라 가며 라코프는 주교가 금빛 제단 앞에서 경건하게 몸을 숙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흰 성좌에 앉아 있는 자여,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당신이 진정 목자라면, 당신의 양들을 돌보시오! 당신의 양 지키는 개들이 양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시오. 이들은 양 떼를 쫓아버리고 어린 양들을 괴롭히고 있소. 이 개들에게 화가 있을 지어다! 이 개들을 다스리지 못하는 목자에게 화가
있을 지어다!” 하고 외쳤다. 모든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고 공포에 떨며 우뚝 멈추어 섰다. 볼이 시뻘게지면서 그들의 얼굴은 수치스러움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이 용감한 젊은 이방인의 말에 많은 이들이 집으로 향했다. 얼마나 많은 소박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먼 곳에서 찾아와서 사제들의 욕망에 헌신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더욱 고통 받고 갈취 당하면서 예수님이 걸었던 땅을 걷는 것으로 그들의 영혼이 채워지기를 소망했는가! 그리고 결국에는 매일 어리석은 의식에 돈을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사제들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십자가의 구멍을 만지려면 금화를 내야 하고, 성스러운 육신이 누인 장소에 키스를 하려면 은화를 내야 하고, 촛불을 하나 켜거나 성스러운 사원의 금간 벽에 손을 대려면 구리돈을 내야 하다니. 그들은 이 비난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았고, 두려움으로 떨기 시작했다. 반면에, 경비는 입을 벌리며 듣고 있던 군중 속에서 라코프를 끌어내서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들은 라코프를 꼬박 하루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물 한 병만 간신히 넣어 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복도를 따라
서늘한 미풍이 불었고 한 젊은 여자가 창살 아래에 서 있었다. 그녀는 순례자로 그를 만나기 위해 몇 시간이나 여기 저기를 찾아 다녔다. 그녀는 어두운 입구를 향해서 목을 길게 빼고는 간청했다. “나의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 한때 당신이 거닐었던 이곳에서 제가 당신을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라코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서 떨며 겸손하게 무릎을 꿇었다.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그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올라가 흑해에 있는 오데사2
커다란 공원은 장미와 올랜더로 빛났고 분수대와 수영장이 있어 더욱 상쾌해 보였다. 라코프는 우뚝 솟은 유리 일광욕실을 지나가고 있었다. 일광욕실에서는 우아하게 차려 입은 방문객들이 대추야자나무와 오렌지 나무 사이를 거닐며 잘 익은 열매를 따고 있었다. 다른 광장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이 시에 다다랐다. 그곳은 화려한 물건을 전시되어 있었고 나무를 심은 넓은 대로에는 웅장한 저택들이 줄지어 있고 값비싼 고급 카페에는 깔깔거리며 웃는 여자들과 거만한 태도의 남자들로 가득했고, 파리나 베를린 등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묵는 고급 호텔들도 있었다. 오데사(Odessa): 흑해의 북해안에 있는 항구도시로 흑해 연안 최대의 무역항
있었는데, 하녀가 미니어처 강아지를 꾸미고 있었다. 그 하녀 옆에 있는 작은 연못에는 부채 모양의 꼬리를 가진 이국적인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연못 가장자리와 바닥은 황금 잎사귀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진 도시 외곽에서 그는 석탄장과 도축장이 발견했는데, 그 뒤에는 판잣집이나 천막집, 흙집이 즐비했다. 정부에서는 오데사의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살도록 했다. 술에 취한 남자는 웅덩이를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고, 사나운 눈빛의 여자들은 소금기 없는 물을 구해 운반하고 있었다. 수척한 아이들과 기운 없는 할머니들은 연기 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오데사의 일용 쓰레기) 물건을 주워 담았다. 음식은 부족했고, 야채 껍질, 고기뼈 같은 겨우 먹을 만 한 것들 이 있긴 했으나 절반은 상한 쓰레기들이었다. 그들은 이것들을 마치 금덩이라도 되는 듯 챙겼다. 라코프는 이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지독한 악취, 소란스러운 사람들, 라코프에게 욕하며 달아나는 지저분한 아이들, 그의 시선을 끌며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 구름처럼 몰려있는 모기떼, 불쌍한 개 등 이 모든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오히려 이런 것들 때문에 그는 이곳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들은 잠자리를 구하려 하는 줄 알고 그를 주의해서 지켜 보았다. 특히 라코프가 예수님에 대해 얘기할 때면 이들을 그를 비웃으며 욕했다. 그러나 그는 쉽게 낙담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사랑은 행동으로 가장 잘 보여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말로 그들에게 확신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점차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이 후 반년 동안 그는 거의 누구와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조용하면서도 열심히 그의 손과 눈, 가슴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도록 했다. 그는 이곳, 저곳을 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뻗쳤고, 봄이 되자 그는 한 친절한 여인에게서 판자, 못, 갈퀴, 괭이, 씨앗 등을 얻어서 동물 우리를 짓고 길을 정돈하고 땅을 파서 야채를 심었다. 곧 그를 가장 불신하던 사람들 조차 그를 도우려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끝났다. 일단의 무리들이 그가 가지고 있던 가구를 불태우고, 연장을 부수고 물건을 내다 버렸다. 이들은 심지어 그가 심어 놓았던 씨앗과 나무까지 뽑아버렸다. 깊이 상심한 라코프는 자기에게 연장을 선물로 주었던 여인에게 돌아가 그녀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여인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에 대한 신뢰를 져버리고 그를 모욕했다.
그날 밤, 라코프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기도했다. 그 다음날도 그는 혼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 다시 그는 오데사의 화려함의 중심인 오페라 하우스로 들어갔다. 밝게 빛나는 그곳에서 초라한 그의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날은 오프닝이 있는 밤이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은 부유함으로 넘쳐 나고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오가고,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이곳 저곳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턱시도와 실크 모자를 쓴 남자들은 턱시도의 꼬리를 흔들며 여자들을 에스코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보석들은 반짝거렸고, 유리잔은 땡그랑 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임 없이 화려한 대리석 계단을 올라 마지막 남은 돈으로 앞 좌석에 있는 티켓을 사서는 웅장한 바로크풍의 연주회장으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는 거의 홀 내부의 화려함에 압도당했다. 붉은 색 천을 씌운 좌석은 이미 부유한 관중으로 가득 차 있었고, 벨벳으로 꾸민 발코니 좌석에서 향수 냄새가 풍겼다. 소리 죽여 웃는 웃음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라코프의 좌석 근처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가 자리에 앉자 침묵이 흐르더니 주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극도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지저분한 녀석은 누구지? 도대체 누가 이런 사람을 안에 들인 거야? 왜 쫓아내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분개하여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누군가 안내인을 불렀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곧 불이 꺼지고 커튼이 올라가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라코프는 조용히 앉아서 1막이 진행되는 내내 기도했다. 그리고 1막이 끝나자 갑자기 일어나 의자 위로 조용히 올라가 관중을 향해 크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수님을 위해 제 말씀을 들어 주십시오! 부유한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위해 이 불쌍한 예수의 종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이 도시 외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절반이라도 알게 된다면 모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행과 빈곤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곳에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 아니 여러분의 형제들이 짐승처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애완견도 그곳의 아이들보다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아주 적은 양의 양식과 옷, 따뜻함과 위로, 힘과 교육을 나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큰 홀에 침묵이 흘렀고, 곧 호위병들이 뒤에서 들어와 라코프에게 다가왔다. 그는 계속해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곧 저는 끌려갈 겁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메시지를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픔에 울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지금 행동으로 실천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랑의 씨앗을 뿌려 선의로 여러분 모두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시기를 빕니다.” 말을 마치자 그를 둘러싼 호위병에게 몸을 돌리고 팔을 내밀더니, “여기 제 손이 있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때까지 쥐 죽은 듯 조용하던 관객들은 그의 말을 듣고는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오페라 안경으로 그를 보려고 하고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얼굴을 본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라코프의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예수님, 제 옆에서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라코프는 체포되어서 감옥으로 끌려갔고, 몇 주간 아무도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벌인 소동은 디너 파티에서 회자되었고, 몇 일 동안 “예수님을 위한 한 방 날리기” “오페라 극장에 미친 사람 등장”, “정신 병자인가 아니면 초기 기독교인인가?” 등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러한 것들은 대개 신경질적인 반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사들은 흥미를 잃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뻔뻔스럽게도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어느 기자는 노숙자들이
사는 캠프를 조사하고는 마치 이를 원시시대의 원초주의라며 비꼬아서 기사를 썼고, “현대 문명사회의 복잡함이 닿지 않은 삶의 평온함”이라는 애매한 말로 사실을 호도했다. 그러나 이곳 저곳에서 라코프가 뿌린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했다. 몇몇 개혁주의적 시민들은 시 외곽에 살고 있는 빈민들의 삶에 충격을 받아 빈곤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려고 노력했다. 오데사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힘을 모았고 지역 상인들에게 물자와 음식을 조달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또한 도시 빈곤 지역에 있는 집을 수리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길을 닦거나 학교를 세울 때까지 계속해서 이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라코프는 이들이 이루어 낸 성과를 볼 수 없었다. 폭동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오데사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대초원으로 나와서 하늘을 그늘 삼아 풀과 지저귀는 새들과 함께 혼자 지냈다.
키예프의 변두리 빈민가에서 지내면서, 서른 살이 된 라코프는 여전히 가난한 이들과 함께 일을 했다. 비록 대부분 꽉 막힌 사람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개를 젓거나 다정하게 그를
팔꿈치로 찌르며, “키예프 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예수는 필요하지 않아요. 우리에게는 성인(聖人)들이 있어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을 구원하기에는 충분히 선하잖아요.” 하고 말했다. 물론 이들이 한 말은 사실이었다. 키예프에는 성인들이 아주 많았다. 라코프는 곧 그곳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미로노프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라브라 수도원에서 집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에 대한 라코프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미로노프는 그에게 “지하실 깊은 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믿고 있는 성인들이 잠들어 있어요. 수 백 명이 있지만 진짜 성인은 아니고, 죽은 순례자와 수도사의 시체를 미이라로 만든 것이거나, 왁스를 바르고 나무 조각상이나 짚으로 채워서 만든 인형 같은 것이랍니다. 검정 제대포로 싼 관마다 한 명씩 누워 있는데 금은사로 수놓은 실크 옷을 입었어요.” 하고 설명했다. 라코프는 떨렸지만, 다음 날 용기를 내어 예배자들과 함께 지하 납골당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채찍을 든 뚱뚱한 수도사가 서서 소위 제물을 바칠 것이 없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순례자들한테 돈을 수거한 후 이 수도사는 성인들을 만지지 말라,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는 등 훈시를 해댔다. 순례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성인의 발바닥에 키스밖에 없었다. 라코프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여기 저기에 무릎을 꿇고 있는 농부들을 보았다. 그는 시체실처럼 축축한 공기를 들여 마셨다. 그리고 창백한 손에 머리를 바짝 뒤로 빗질을 해서 두건을 쓴 채로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지켜 보았다. 램프는 음울하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머리 위에서 흔들거렸고, 향로가 천천히 호를 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라코프는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예수님께 기도했다. 이들의 속임수를 드러내고 이 졸렬한 쇼를 끝내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수도사의 채찍을 낚아채고는 순례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제단에 있는 박제한 시체를 힘껏 발로 차자 부스러기가 가득 떨어졌다. “이것 보세요! 여기 훌륭한 우상이 있군요. 사기가 판치는 동굴에서 벗어나시오, 이 눈먼 사람들아!” 하고 외쳤다. 그가 화가 나서 채찍을 휘두르자, 순례자들은 공포에 떨려 도망쳤고, 뚱뚱한 수도사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라코프는 북새통인 지하 납골당에서 도망쳤지만, 결국 밤에 체포되었다. 그는 차디찬 감옥에서 재판 날짜를 기다리면서 성서를 가지고 자기 변호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채찍을 성사로 세우셨다. 이 채찍은 위선자와 사기꾼을 쫓아내는 도구일 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채찍을 휘둘러야 한다. 내가 한 것은 그 뿐이다.” 라코프는 감옥에서 여러 날을 보내면서도 꿋꿋하게 용기를 내며 쾌활하게 지냈다. 그가 뿌린 씨앗이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들의 마음밭에 뿌려 졌고, 시간이 지나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초로 자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감옥에서도 씨를 뿌렸다. 이전에는 교도관들은 죄수들을 마치 짐승처럼 다루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일부는 라코프의 따뜻함에 감동을 받았고, 그의 사랑에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죄수들을 자신들과 같은 형제로 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라코프가 있는 감방에 가서 어떻게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럴 때면 라코프는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미움을 받아야 합니다. 고통은 저에게 명예 훈장과 같습니다.” 라고 말할 뿐이었다. 물론 이는 사실이었다. 라코프는 모멸감과 굴욕을 당할 때에도 투덜거리지 않고, “하하. 또 훈장이 생겼네!”하고 말하며 웃었다. 이것이 바로 한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비밀이었다.
라코프는 재판을 받지 않았다. 수도회가 그 일이 공공에 노출되는 창피스러움을 피하기 위해서 라코프가 일으킨 사건을
덮어버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석방되어서 고향인 아르한겔스크로 추방되었다. 우선 그는 아버지의 집에 머물다가 시내로 이사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가장 가난한 지역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하며, 가르치고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거리에서 그는 책을 사서 사람들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다음에는 아이들을 모아 복음서를 읽어주었다. 그는 싸우고 있는 부부를 화해시키기도 했고, 창녀에게 좋은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하였다. 그는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지만, 정욕과 속임수에 대해서는 엄격했다. 물론 이런 태도는 칭찬은커녕 사람들에게 발길질이나 주먹질을 받을 뿐이었다.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아주 열악한 지역에 있는 방 2개를 빌려 검소한 식당을 열었다. 그가 별다른 수입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따르는 이들조차 이 결정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있었고, 그것으로 족했다. “예수님을 위해 일하자.” 라는 것이 그가 요구했던 전부였다. 따로 음식과 연료, 월세를 달라고 요청한 적이 거의 없었다.
라코프는 고기나 술을 먹지 않았는데, 이는 술을 마시면 취할
수가 있고, 고기는 식용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기도나 성경 구문을 몇 개 말한 후에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후, 라코프는 “이 음식으로 여러분 모두 영육 간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분노를 내거나 잔인하게 폭력을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오직 사랑으로 손을 내밀어 오직 예수님으로 마음의 불을 밝히시길 빕니다. 여러분의 몸이 오직 인정 많고 헌신적인 행동에 앞장 서기를, 또한 여러분의 영혼이 오직 예수 성심만을 비추기길 바랍니다.” 하고 축복했다. 그는 계속해서 “저는 실패할 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은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분은 승리만을 일구시고, 아무도 그분을 막을 수 없습니다.” 라고 예전처럼 자신 있게 나아갔다. 겨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아침 동틀 무렵 일어나 큰 썰매에 식량을 싣고 바람을 헤치며 집을 나섰다. 그는 “음식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도 내가 음식을 그들에게 갖다 주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고 설명했다. 허름한 집집을 돌면서 사람들이 가장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빵, 밀가루, 나무나 석탄, 설탕, 소금, 차나 담요 등을 주려고 애썼고,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묻기도 전에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어느 곳에서 그는 유난스레 거칠고 술을 달라고 조르는 남자들을 만났다. 라코프는 이들과 함께 머물면서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들이 일하는 제재소 옆에는 선술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외상으로 술을 팔았다. 그로 인해 많은 가정이 파괴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 먹고 1교대가 시작하기 전에 제재소에 가서 이들을 모아 기도를 하도록 했다. 또 상호 부조 기금을 만들어 채소밭을 각각 할당된 몫만큼 구매할 수 있도록 했고, 학업을 계속 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라코프가 일꾼들과 함께 한 이후로 생산성도 높아지고 일꾼들이 더 이상 술도 마시지 않게 되자, 제재소 사장은 라코프의 영향력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는 꽤 많은 돈을 기부해서 고아원을 세웠다. 라코프는 자신이 하는 일에는 모두 예수님이 뒤에 계신다면서, “저는 그저 건축하는 것을 지켜 봤을 뿐입니다.”하고 말했다. 소문이 곧 퍼졌고, 라코프는 매일 1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공급했다. 많은 이들이 단순히 육체적인 허기를 채우려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위로를 받기 원했고, 라코프의 말에서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상점 주인들은 소외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자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라코프가 운영하는 식당이 시(市) 규정을 어기고 있다며 고발했고, 결국 라코프의 작은 식당은 영원히 문을 닫게 되었다. 라코프가 처음 고아원을 세웠을 때에는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만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도 찾아왔고, 약 40명의 아이들이 고아원에 살게 되었다. 라코프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먹이고, 재우면서 밤낮으로 열심을 다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이들이 다툴 때에는 화해 시키고 집안일도 함께 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뛰어 놀았고, 아이들에게 손가락 게임이나 노래들을 가르쳤다. 방문객들은 사람이 어떻게 동시에 아빠도 되고 엄마도 될 수 있냐면서 그의 부드러움과 인내심에 감탄 했다. 라코프는 큰 아이들에게 매일 최소한 한 번이라도 착하고 용감한 행동을 하도록 격려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거리에 나가서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렴. 연로하신 분이나 가난한 사람, 아니면 소외 받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 보렴. 혼자서 다니지 말고, 몇 명씩 그룹을 지어서 가고 해질녘까지는 꼭 돌아와야 한다.” 하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아이들은 두 세 명씩 짝을 지어 신나게 뛰어왔다. 그들은 자랑스럽게 얼굴을 빛내며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얘기하느라 정신 없었다. “할머니께서 난로에 땔감을 쌓는 일을 도왔어요”, “저희는 항구 벽에 적힌 욕을 지웠어요”, “술 취한 아저씨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어요.” 어떤 아이는 아주머니를 대신에 심부름을 했고, 또 어떤 아이는 다친 개 옆에 앉아 쓰다듬어 주었다. 어떤 아이 둘은 가게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치웠고, 다른 아이 둘은 편찮으신 노인을 대신해 석탄을 날라 주었다. 아이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하루를 잘 보내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위해서 아무 것도 가지지 말고, 다른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십시오!”,“누구도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라코프의 모토였고, 진정 그는 그렇게 살았다. 그는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가난한 이와 함께 나누었는데, 그는 곧잘 이들을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한번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모피 코트를 선물로 주었는데, 그는 다음날 길거리에서 만난 걸인이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을 보자 그 옷을 걸인에게 주었다. 추위에 그의 손이 빨갛게 된 것을 본 사람들이 라코프에게 장갑을 주었지만, 그는 한번도 장갑을 끼지 않았다. 그는 선물을 준 이에게 선물 받은 장갑을 다른 사람에게 줄
계획이라고 말하며, “저는 걱정 마세요. 가난한 사람들은 장갑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도 잘 모르는 걸요. 저야 꼭 필요하면 언제든지 한 켤레 정도는 구할 수 있어요.” 하고 말했다. 라코프에게는 이 외에도 스스로 실천하는 두 가지 다른 모토가 있었다. ‘당신보다 음식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을 알고 있으면 먹지 말라’,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잠자리를 찾기 전에는 잠들지 말라’ 였다. 이것을 실천하고자 그는 밤에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잘 곳이 없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쯤 되자 그 지역에서 라코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그를 존경했고, 일부는 그가 너무 수수께끼 같은데다가 별나면서도 너무 순진했기 때문에 그의 선행을 몰래 지지했다. 물론 가난한 이들에게는 그는 성인(聖人)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그를 구세주라고 생각했는데, 한 노파는 그의 손에 키스를 하려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라코프는 화를 내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그는 “제가 어떻게 예수님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사람일 뿐이지만, 예수님은 사람이자 신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시고, 제 안에 살아계십니다. 저는 그저 진흙으로 만든 집과 같은 존재 일뿐,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제가 죽어 먼지가 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집으로 삼을 새로운 가슴을 찾을 때까지 여행을 하시겠지요.” 하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아르한겔스크의 군중들이 라코프를 우러러 본다면, 권력자들, 특히 러시아 정교회의 사제들은 그를 싫어했다. 그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 가는 것을 시기했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가 이단이라고 투덜댔다. 그리고 곧 이들은 비밀 경찰에게 라코프를 고발했다. 스파이는 매일 그가 하는 일들을 염탐하며 조사했지만, 그를 체포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성인(聖人)을 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성상은 정해진 방식대로 붉은 색 천과 함께 기도실 구석에 전시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성경만 보며 다른 거룩한 책들을 모두 폐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들이 그의 방을 조사해 보니 이단적인 책은 아무 것도 없었고, 오히려 모든 책들은 공식 승인 도장이 찍힌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계속해서 음모를 꾸몄다. 그가 헌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라코프는 교회에 소속이 안된 사람이었고, 그의 가르침은 정통적인 것이 아니며, 그의 카리스마는 위험 천만할 뿐 아니라, 그가 계속해서 예수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어느 화창한 가을 아침, 라코프는 이단이라는 이유로 갑작스레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그가 “주님께서 저를 대변해 주실 것입니다.” 하며 변호사의 도움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도시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다행히도 라코프를 담당한 판사는 편견이 없이 관대한 사람이었는데, 라코프를 불쌍히 여기고 무죄라고 믿었다. 실제로 이 판사는 “게으른 술주정뱅이 사제들”을 경고하기 위해 이 사건을 기각하고 그를 석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법은 법이고 절차는 절차이므로 그는 의자 앞으로 라코프를 불렀다. 그리고 그의 믿음에 대해 정식으로 심문하면서 그가 신봉하는 가르침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명했다.
라코프는 놀란 듯 “제 가르침이요?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 외에는 아무것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제 유일한 소원은 그분을 따르는 것이고, 그것이 제 일생의 과업이자 사실 모든 사람들의 일이지요. 이게 제가 가르친 전부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저를 처리해 주세요. 저는 상관 없습니다. 오랜 세월 예수님께서는 제 가슴 속에 살고 계셨고, 그분이 제 마음에 들어오신 순간 저는 죽었습니다. 라코프는 이미 죽은 지 오래
전에 죽었지만, 천 번은 더 죽어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예수께서는 살아계시고 항상 승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엔겔하르트는 간단한 설교에 크게 감동을 받아 입을 다문 채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나중에 그는 라코프에게 밀 케이크와 우유를 보내주었고, 그를 석방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라코프를 구하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같은 날 막강한 권력의 종교 법정의 스파이들이 다시 그를 체포했다. 교회 당국은 아르한겔스크의 성난 군중들을 누그러뜨리려고 공식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들은 라코프가 혁명주의자에다 미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신실한 사람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며 평신도들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를 탄압하지 못하게 막지 못했다.
한편 그것은 나태함이었다. 라코프는 이를 “높은 곳에서 불어온 바람은 주님께 촛불을 봉헌하면서 졸음에 빠지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너무 강하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가장 부드러운 봄바람에도 불편함을 느끼며 심적인 부담을 느끼는 죄의식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이 위선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심판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아르한겔스크에 있는 모든 성직자들은 무엇이 라코프를 이끌어 가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자극하고 힘차게 내달릴 수 있게 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성심으로, 거짓으로 섬기는 이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품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1894년 10월 20일 오전 8시, 라코프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비밀리에 도시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작별인사를 할 수 없었다. 그의 주인처럼,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 셋이었다. 한달 후, 그는 남쪽으로 1000 킬로미터 떨어진 수스달 수도회의 음산한 지하감옥에 갇혔다. 그가 추방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아르한겔스크 사람들은 매우 슬퍼했다. 특히 그의 부모에게 큰 아픔을 남겼다. 3개월 후, 라코프의 어머니는 슬픔을 못 이겨 세상을 떠났고, 곧 그를 대신해서 몇 번이고 진정서를 넣었던 아버지 역시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라코프는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외진 곳에 감금되어 음습한 감옥에서 친구라고는 벌레들뿐이었고, 안락한 곳이라고는 곰팡내 나는 낙엽 무더기 침대 뿐이었다. 창살 쳐진 작은 창은 너무 높아서 열 수도 없었고, 낮에만 겨우 빛이 조금 들어올 뿐 그 외에는 그마저도 없어 아주 추웠다.
식사도 불규칙적이었고, 그나마도 맛없는 찌꺼기만 줄 뿐이었다. 갇힌 지 얼마되지 않아 라코프는 고열에 시달렸다. 그는 많은 꿈을 꾸었다.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고, 그를 괴롭히던 환상들은 잠자는 것 조차 지옥으로 만들었다. “돌아 오너라, 이 어리석은 녀석들아!” 그는 마치 온 세상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겪기라도 하는 듯 고통에 차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은 지옥으로 향하고 있어. 너무 늦기 전에, 멈춰. 멈춰! 멈추라고!”하며 소리질렀고, 억눌린 비명소리와 함께 “그것은 오만! 살인! 욕정! 사기야! 돌이켜서 예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 너에게 오실 수 있도록 해!” 하고 외쳤다. 결국, 라코프의 말에 뒤숭숭한 생각이 들었던 교도관은 그가 수도원 정원에 있는 작은 벽돌집에 기거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다. 한때 건장했던 라코프의 몸은 소진되어 창백했고, 자신감이 넘쳐 원기 왕성한 그의 정신도 이제는 완전히 붕괴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햇빛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정기적으로 식사를 하면서 그는 놀랍게도 다시 회복되었다. 수척했던 몸은 다시 천천히 건강해졌고, 그를 괴롭히던 악몽도 조금씩 사라졌다. 그의 얼굴은 하늘의 순전한 기쁨으로 빛나면서 그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되어 간단한 말 외에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정신적으로 미쳤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의 너머에서 이러한 일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라코프는 작은 정원 구석에 앉아서 그의 웅크린 어깨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남은 여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냈다. 눈을 감은 채 손을 모으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가끔은 천천히 주변을 걷거나 몸을 흔들면서, “지금 저는 춤추고 있는 거에요.” 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엄청난 행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몹시 의아해 하면서도, “곧 하느님을 만나 뵐 거에요.”하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이렇게 춤을 추던 그가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무릎을 꿇었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큰 소리로 “예수님!”하고 외쳤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 조용히 숙이더니 앞으로 푹 쓰러졌다. 그는 하느님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모든 인간의 삶은 종착역에 다다르더라도 하느님의 영은 결코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라코프는 묻힐 준비가 되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대륙을 횡단할 준비를 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그들이 일하고 있던 쟁기와 그물을 버렸다. 바로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초원을 지나고 숲을 넘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거하시고 그들의 집에 오신다. 예수님은 거지들의 눈을 살펴보시며, 아이들을 축복하신다. 어떤 스파이도 예수님을 막을 수 없고, 어떤 판사도 체포할 수 없으며, 어떤 감옥에도 예수님을 가둘 수 없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국경을 넘으실 수 있고, 또 우리들 가운데 걷고 계신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기를 기도하자. 우리는 그분을 너무나 간절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계속 찾아 다니신다. 그리고 라코프의 모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